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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대구,경북의 산

상주 백악산

캐슬스카이 2018. 8. 4. 16:07

상주 백악산(856m)


옥양폭포

폭포는 길이 30m 가량의 대들보같은 석교 밑으로 물줄기가 쏟아지는 기이한 모습의 폭포로 유명하다.

현재 극심한 폭염으로 인해 수량이 많이 줄자 물이 아쉽게 마른다.


산행일자:2018년8월2일 맑음

산행자:레이더스

산행코스: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수안재-부처바위-침니바위-대왕봉-덕봉-백악산 정상-헬기장-

           솥뚜껑바위-보굴-옥양폭포-옥양폭포 입구주차장

산행시간:7시간13분(점심및 간식,휴식,사진촬영포함)

산행일지:

06:27 부산 전포동자택 출발(승용차 운전)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소머리국밥을 먹는다.

10:29 옥양폭포 입구주차장 도착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까지 도보 15분

10:50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산행시작)

10:54 백악산지킴터

12:19 수안재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데 점심을 먹을까 고민한다.

        고민끝에 시원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12:39 출발

12:54 부처바위

13:09 침니바위

13:39 이정표 삼거리

13:48 대왕봉

14:02 이정표 삼거리를 되돌아서

14:43 덕봉

14:58 돔형바위

15:30 백악산 정상

16:26 헬기장

17:00 솥뚜껑바위

17:45 보굴

17:52 옥양폭포

18:03 옥양폭포 입구주차장(산행종료)

18:21 옥양폭포 입구주차장 출발(승용차 운전)

        고속도로휴게소에소 더덕나물비빔밥을 먹는다.

22:24 부산 전포동자택 도착


백악산 개념도


옥양폭포 입구주차장

등산로입구(산행들머리)


화북초등학교 입석분교

백악산지킴터

오른쪽 길에 들어간다





부처바위


 

당겨본 부처바위


침니바위

원숭이의 해골같은 바위

대왕봉에 진입한다.

덕봉(좌),백악산(우)

바위로 올라간다.


대왕봉



바윗길





덕봉




돔형바위





코끼리바위







바라본 덕봉

대왕봉(좌),덕봉(우)








백악산 정상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문장대(가운데)


















철모같은 바위

솥뚜껑바위




오리같이 생긴 나무

 보굴

 보굴은 마치 지붕같이 튀어 나온 바위 안에 뚫어진 굴이다.


《세희공주부부의 내려온 전설》

동굴에는 실제로 세조의 큰 딸(이세희)과 김종서의 둘째 손자(김차동)가 사랑의 도피를 한 은신처라는 전설이

내려온다는 사실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세조실록 참고)

세조가 등극한 지 얼마 안되서의 일이다.

세조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어려서부터 매우 슬기롭고 영리하여 집안의 귀여움을 온통 독차지하고 자라났지.

그런데 세조가 김종서 등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마침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딸은 몹시 안타깝게

여기면서 "아바마마,왜 어진 재상들을 모두 죽이시나이까?그리고 어린 왕이 가엾지도 않으세요?"하고 항의

 비슷하게 아뢰었다.그러나 어린 딸의 말 한 마디쯤으로 마음을 돌이킬 세조가 아니었다.

뒤이어 성삼문 등 충신들을 몰아 죽이고,어린 단종까지 영월로 내쫓아 살해하여 버리자,세희공주는 비통한

 눈물을 금치 못하면서 부왕 세조를 향하여 극간하였다.

"아바마마! 어쩌자고 충신들을 그처럼 참혹하게 죽이시고,이제 또 죄없는 상왕마저 살해하시나이까?후세 사람

들이 아바마마를 어떻게 생각하겠나이까?너무 하시나이다"하고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 통곡하였다.

이에 세조는 크게 노하였다.

"어린 계집애가 방정스럽게 무슨 괴이한 잔말이냐.너도 같이 죽어 보겠느냣?"

사실 세조에게는 딸 하나쯤은 그리 대단치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곧 사약으로 죽이려 하는데 정희왕후 윤씨가 이를 눈치채고는,자식을 사랑하는 모정에 차마 그냥 둘

수 없어,몇 번이나 남편 세조에게 매달려 구명을 청하였으나,고집불통인 세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다 못한 정희왕후 윤씨는 마침내 유모와 함께 많은 금은 보패를 내주어 야간 도주케 하며 이르기를 "공주

는 이제 왕실의 자손이 아니니,어느곳에 가서 살던지 신분을 숨기고 평민이 되어 부디 몸조심하며 편히 잘 살

아라"하였다.세희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성문을 빠져 나오니 그저 암담할 뿐으로 달리 묘책이 없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세희공주가 송림이 울창한 심산 유곡인 지금의 백악산 옥양동에 이르자 마침내 날이 저물

어 숙소를 찾게 되었다.마침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보니 보굴암 입구의 초막에서 나온

 불빛이었다.하룻밤만 유하려고 주인을 찾으니 초막에서 나온 주인이 엄두리총각이라 세희공주는 차마 말 못하

고,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여러날의 노독을 이야기하였다.총각도 처음에는 낯선 규수의 유숙을 거절하다가 딱한

 공주의 사정을 듣고서는 자기 방을 비워 주었다.세희공주는 총각이 부엌에서 잠을 자겠다는 소리에 범상치 않

음을 직감하고,유모와 의논하여 총각과 평생가약을 결심하게 되었다.이튿날 세희공주는 총각에게 피차 팔자가

 기박한 사람끼리 이왕에 이렇게 만났으니 성혼하여 부부가 됨이 어떠하냐고 의중을 물었다.총각 역시 공주의

언행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마음을 허락하였다.이렇게 하여 신분을 속이고 평민이 된 세희공주는 보굴암 밑

초막에서 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출생하게 되자,세희공주는 농밑 깊숙히 넣어 두었던 금은 보패를 꺼내 놓으며 남편에게

자신의 신분과 그동안 감춰야만 했던 내력을 이야기했다.그러자 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남편이 갑자기 일어

나 세희공주를 향하여 두 번 절하고,목메인 소리로 자기의 신분을 밝히었다.

그는 바로 절재 김종서의 둘째 손자로서 환란 당시 구사일생으로 집을 빠져나와 이 심산 궁곡에서 은신중이었

던 것이다.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은신하여 살던 그 부부는 가진 보물들을 내다가 팔아서 마을로 나갔다.

거기서 집과 땅을 사서,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로 이사하여 수년을 살던 중 마침 세조께서 득병하여 속리

산에 요양차 입산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세희공주는,그 때 여섯 살 난 아들과 네 살짜리 딸을 불러놓고 "오늘 이

리로 상감님의 행차가 지나신단다.상감님은 이 나라의 임금이시고,너희 외할아버지 되시는 어른이야."하고 무

심코 이야기해 주었다.세조왕의 행차가 지나감을 보고,북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하였다.세조는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어느 아이의 모습이 죽은 딸의 모습과 꼭 닮은 데 놀랐다.

세조가 무심코 그 아이들을 내려다 보다가 맨 앞에 서 있는 세희공주의 아들 딸 남매에게 눈길을 주어 유심히

 흝어 보았다.세조는 문득 마음이 동하여 그 두 아이를 가까이 불러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러 가지 말을 물

어보았다."그러시는데 상감님이 너희 외할아버지이시라고 하면서 오늘 이리로 지나가시게 될 거라고 하잖아요.

" 순간 세조는 반가운 빛을 용안에 가득히 띠우고,"그래 너의 엄마가 지금 집에 있느냐?"하고 물었다.

세조가 지나다보니 웬 아낙이 길가에 엎드려 울며,가까이 불러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아

낙은 몇해전 자신이 죽으려 했던 그 공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되었

던 세조는 늘 공주의 일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몹시 기뻐하며 공주의 결혼생활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해서 김종서의 후손은 끊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옥양석교 밑을 흘러 이루어진 옥양폭포를 앞에 두고

 천장 절벽이 만든 보굴은 그 당시 공주부부가 명명한 것이라고 전한다.(금계필담,상주문화원 참고)


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순천김씨인 아는 친구는 김종서의 후손들이 계유정난을 피해 충청도 공주에 숨어

있던 집안이다고 들었다.


문잠긴 상태로 굴을 안타깝게 구경할 수 없다


옥양폭포








옥양폭포 입구주차장(산행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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